챔피언 기획 해설: 나피리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랭크 게임에서 짓밟힌 후 산뜻한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식히고자 산책하러 나갑니다. 날이 더워 집이 갑갑해졌던 차였습니다.
해가 진 후 포근한 저녁이 가고 서늘한 밤이 내리며 윙 소리와 함께 가로등에 불빛이 들어옵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이상하리만치 거리에는 적막이 흐릅니다.
거리를 걷다 보니 멀찍이 무언가의 형체가 보입니다. 가로등의 불빛을 집어삼키는 참나무의 거대한 그림자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형체에 일렁이는 두 눈이 보입니다.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듯합니다.
서서히 접근하자 두 눈이 땅에 다가가며 떨어집니다. 눈이 등줄기와 같은 선상에 있는 듯합니다. 등줄기는 네발로 이어집니다. 점차 눈 아래에 긴 주둥이의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알고 보니 개였습니다! 이웃집 골든 리트리버가 길을 잃었나 봅니다. 개는 머리를 더욱더 낮게 떨어트립니다. 복종과 불안의 표시죠. 겁먹은 걸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가까이 서서히 다가가는데 갑자기 시야 끝에서 네다섯 개의 어슴푸레한 형체가 나타나더니 첫 개를 중심으로 재빠르게 대형을 이룹니다.
공포에 눈앞이 캄캄해지기 전 마지막으로 명료한 생각이 하나 듭니다. ‘개가 머리를 떨어트린 이유는 무서워서가 아니었구나’. 개가 내달릴 준비를 합니다. 다른 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역시 뛸 생각입니다.
엄청난 오판입니다.
강챔(강아지 챔피언)의 탄생
악독한 자태를 뽐내며 존재하기 전 나피리의 시작은 여느 챔피언과 다름없었습니다. 나피리 역시 기획 목표에서 비롯했습니다. 챔피언 팀은 새로운 다르킨 멍멍이를 기획할 때 매우 구체적인 게임플레이 공백을 채우고자 했습니다.
게임 기획자 글렌 “Riot Twin Enso” 앤더슨 님은 “얼마 전 챔피언 기획 리드 어거스트 브라우닝 님이 플레이어에게 신선함을 선사할 기회를 찾고자 모든 챔피언을 분석하고 각각 포지션, 역할군, 난이도별로 분류했습니다. 분석한 결과 높은 숙련도를 요하는 탱커, 비교적 단순하고 입문이 쉬운 암살자 등 두 가지 주요 공백을 찾았는데 전자는 크산테가 되었고 후자는 나피리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추가로 살펴보니 인간과 공허 괴물 가오리의 경계에 있는 벨베스를 제외하면 진정한 생명체 챔피언을 출시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리그 오브 레전드에는 온갖 괴물 챔피언이 있지만, 인간형이 아니면서 더 친숙하고 특징이 뚜렷한 매력을 지닌 생명체 챔피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몇 차례 구상 회의 후 리그 오브 레전드에 개를 제대로 대표하는 챔피언이 없다는 데 의견이 모였습니다. 나서스와 워윅이 있기는 하지만, 둘은 개보다 인간형에 가깝습니다.
암살자로 플레이하면 강력하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며 협곡에 암살자가 있다는 사실은 상대에게 불안과 공포로 다가와야 합니다. 매서운 들개에게 쫓기는 것만큼 즉각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은 많지 않습니다.
나피리를 담당한 수석 서사 작가 존 “JohnODyin” 오브라이언 님은 “개에게 쫓겨본 안 좋은 경험이 있다면 알겠지만, 뛰는 건 상황을 악화하기만 할 수 있습니다. 달리면 개가 더 흥분하기 마련입니다. 개는 사람의 활기에 맞추려고 하니까요. 이러한 경험을 연상하는 챔피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대상이 달리기를 원하는 개가 목표였죠. 대상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 야수의 본능이 나피리를 사로잡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피리는 홀로 쫓아오지 않습니다. 무리와 함께 다니죠. 함께 사냥하고 함께 생각하며 함께 슈리마의 험난한 사막에서 생존하는 무리입니다. 그리고 무리는 이제 고대 신성전사 다르킨과 집단의식을 공유합니다.
Riot Twin Enso 님은 “이야기를 나눌 때 누가 한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서운 건 개 한 마리가 아닙니다. 코요테 한 마리가 아니라 무리가 무서운 거죠. 등을 돌리면 다른 코요테가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개념을 토대로 구상을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르킨 한 명의 영혼이 슈리마 모래 언덕 사냥개 무리에 흩어져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다른 다르킨과 마찬가지로 나피리의 영혼은 무기에 봉인되었습니다. 나피리는 고대 투척용 단검에 봉인된 후 사막의 지하 무덤에 갇히고 잊혔습니다. 어느 날 도굴꾼이 단검을 가지고 가자 나피리는 자유를 찾은 줄 알았습니다. 무지한 도굴꾼이 단검을 맨살로 만지고 육신을 다르킨 마법에 노출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도굴꾼은 단검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나피리의 새로운 숙주로 변하는 일을 피하고자 단검의 날과 자루를 만지지 않도록 큰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도굴꾼의 비운은 역설적이게도 단검을 만지지 않기로 한 데에서 비롯했습니다. 지하 무덤에서 돌아가며 슈리마 모래 바다를 건너는 도중 도굴꾼은 굶주린 모래 언덕 사냥개 무리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도굴꾼의 몸과 말, 소지품은 전부 갈기갈기 찢겼고 단검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습니다.
이제 단검 속 다르킨의 영혼은 무리 안에서 깨어나 무리가 공유하는 집단지성의 힘을 얻었습니다. 나피리의 목 주위와 각 동료의 주둥이에 달린 형태에서 단검의 원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서사 편집자 일란 “Qulani” 스티멜 님은 “개와 늑대를 생각하면 보통 무리에 우두머리가 있다는 전통적 개념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저희는 우두머리라는 개념에 집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리의 공생 관계에 중점을 두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룬테라의 여타 다르킨과 나피리의 차별점은 여기에서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나피리는 처음에 개 여러 마리에 갇힌 자신의 처지가 못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무리가 공유하는 관계 덕분에 아무리 험난한 환경에서도 생존하고 번창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다르킨으로서 새로 만난 무리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JohnODyin 님은 “마치 사악한 깨달음을 얻거나 자의식을 내려놓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나피리는 악의를 품고 있죠. 다르킨이 다시 룬테라를 장악하기를 바랍니다. 그 악의를 실현하고자 자아를 내려놓기로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 그릇에 걸쳐 흩어진 하나의 정신
게임 내에서 나피리의 발자국이 늘어나는 가운데 Riot Twin Enso 님과 게임 기획 관리자 스티븐 “Riot Raptorr” 오커 님은 나피리로 단순하고 배우기 쉬운 암살자 게임플레이를 선사하겠다는 목표를 계속 지켜야 했습니다. 나피리의 스킬은 강력하되 쉬워야 했습니다. 또한 킬을 확보할 때 무리에 의존하는 정도가 커야 했습니다. 따라서 나피리와 멍멍이 친구들에게 똑똑한 새로운 인공지능이 필요했습니다.
Riot Raptorr 님은 “나피리의 동료가 떼 지어 다니는 개처럼 행동하게 하는 데 큰 중점을 두었습니다. 요릭의 망령이나 벨베스의 공허충처럼 무분별한 미니언 같은 느낌은 피하고자 했습니다. 무리가 도움을 주는 동료로서 게임 내내 유의미한 활약을 한다고 느껴지기를 바랐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나피리는 플레이하기 단순하도록 기획했지만, 무언가를 쉽게 하는 일이 사실 엄청나게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Riot Raptorr 님은 나피리의 게임플레이 요구를 기획안을 작성하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팀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나피리에게는 여러 가지 독특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동시에 폭넓은 플레이어층이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길 수 있게 하는 최소 사양을 준수하며 기존 게임 코드로 구현해야 했습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마테오 “Riot Chibattabun” 만니노 님은 “스티븐 님의 문서를 본 후 다른 게임의 비슷한 기능을 찾아보고 다른 장르에서는 무리의 움직임을 어떻게 구현하는지에 관한 백서를 읽었습니다. 무리의 이동 경로에 문제가 없어야 했으며 무리가 공격 명령에 빠르게 반응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올바른 대상을 공격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당연히 암살자 게임플레이를 방해하지 않아야 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나피리와 무리를 구현하고자 엔지니어링 팀에서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기술은 탄탄하면서도 혹시 모를 게임플레이 변경사항을 적용할 여지가 있어야 했습니다.
Riot Chibattabun 님은 “실시간 전략 게임처럼 떼를 지휘하는 느낌을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구현하는 한편 플레이하기 쉬운 챔피언으로 만드는 일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새로운 기술 덕분에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의 대형 기능과 비슷하게 무리 속에서 나피리의 위치를 손쉽게 조종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스타크래프트 2의 빠른 조작감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야수의 아트
개 무리는 기획과 엔지니어링 차원에서 흥미로운 난제였지만, 아트 디렉터 젬 “Lonewingy” 림 님에게는 키아나, 제리, 세트, 케일 업데이트, 이블린 업데이트 등등 수많은 예쁜 인간을 만들다가 드디어 다시 생명체 챔피언을 담당할 신나는 기회였습니다.
Lonewingy 님은 “개를 선택한 이유는 생명체 테마가 매우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게이머와 비게이머를 통틀어 개를 키우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래도 다양한 개의 전형과 견종을 살펴봐야 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견종을 살펴보니 오카미의 전사 늑대부터 대검을 휘두르는 잿빛의 늑대 시프까지 사실 대중문화와 게임에 참고할 만한 다양한 견종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초기에는 룬테라의 어느 지역을 서식지로 할지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검을 휘두르는 녹서스의 용 사냥개, 케르베로스 느낌이 나는 프렐요드의 냉기 주시자 강아지, 해와 달의 형태로 변하는 타곤의 리트리버 등을 고려해봤습니다.
결국 팀은 Lonewingy 님의 다른 구상에 마음이 갔습니다. Lonewingy 님은 귀엽다고 하기는 애매한 강아지와 함께하는 악마 같은 개를 생각했습니다.
Lonewingy 님은 “그런 방향을 추구하되 악마 생명체의 느낌을 줄이고 개의 느낌을 더 살려보기로 했습니다. 다르킨은 원래 초월체였으니 슈리마에서 유래한 다르킨 무리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Lonewingy 님의 재작업을 거치며 나피리와 무리는 점점 현실의 개와 비슷하지만... 단검 형태의 암시가 뾰족하게 살아있는 개를 다르킨이 숙주로 삼은 듯한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Lonewingy 님은 심지어 다르킨 영혼이 자리 잡기 전 슈리마 모래 언덕 사냥개의 원래 모습까지 만들었습니다.
Lonewingy 님은 “사실 아프리카들개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모래 언덕 사냥개라고 하면 떠오르는 모습과 아프리카들개의 모습이 비슷했습니다. 그리고 무리와 소통하고 낙오자를 방지하는 신호로 귀를 사용한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Lonewingy 님은 모든 다르킨에게 역사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나피리에게는 전생, 전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생을 암시하는 귀걸이를 추가했습니다. 귀걸이는 단검의 자루에 원래 주인이 달아 놓은 장식이었으며 나피리의 원래 몸에서 남은 마지막 물체입니다.
사냥개의 으르렁거림
다르킨 멍멍이가 배경 이야기, 게임플레이 특징, 새로운 무리 기술, 치명적인 자태까지 갖게 되었지만, 악마 개 무리는 어떠한 소리를 낼지가 아직 의문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음성 프로듀서 닉 “ProfRincewind” 랜자 님은 “나피리는 작업이 정말 복잡한 챔피언이었습니다. 애초부터 개가 여러 마리 있으니 음성 역시 여러 개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음성 작업을 할 때 정말 흔치 않습니다. 디지털 효과나 가공의 힘에 지나치게 기대지 않고 거친 동물적 소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성우가 같은 대사를 다른 음색과 연기로 겹겹이 여러 번 실제로 녹음하는 전통적 방식으로 효과를 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처음 낸 음성 기획자 오스틴 “Riot Puma Pet” 멀린 님에게 큰 감사를 표합니다”라고 말합니다.
Riot Puma Pet 님은 챔피언의 음성이 어떠한 음색적 특징을 띠어야 할지 살펴보며 물리적 측면과 감정적 측면 등 두 가지의 주요 기획 요소를 고려했습니다. 음성 팀과 함께 개 여러 마리의 목소리(물리적 측면)를 담아내는 동시에 무리의 집단의식에 기여하는 내면의 다르킨 영혼(감정적 측면)도 담아내야 했습니다. 나피리에게는 이러한 목소리가 수없이 많습니다.
Riot Puma Pet 님은 “나피리를 연기한 몰라 고론도나 성우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피리도 없었을 겁니다. 몰라 님은 다양한 목소리와 연기를 시도하며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해주었습니다. 작업 시간은 괴물 소리와 새로운 시도로 가득한 놀라운 놀이터 같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귀가 예리하다면 나피리의 음성에서 괴물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가 많이 들릴 겁니다. 무리에서 나피리의 통솔력을 보여주고자 각 음성 대사는 인간적 느낌이 더 강한 추가 연기로 세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적 느낌이 강한 녹음을 가공한 후 몰라 성우님이 생명체의 특징을 마음껏 살린 두 번째 녹음을 추가했습니다.
둘을 결합해서 원시적이고 영묘한 반견 다르킨의 목소리를 완성했습니다.